AI 확장과 전력수요의 폭발
투자 가속의 전제
생성형 AI가 확산되면서 서버·가속기·전력·부지까지 인프라 수요가 기하급수로 커지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가 2030년 약 945TWh로 지금의 두 배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골드만삭스는 2023년 대비 최대 165% 증가를 전망했고, 미국의 경우 최근 3년간 데이터센터 건설지출이 세 배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현장에선 조지아주처럼 데이터센터 수요를 이유로 추가 10GW 전력 확충 논의가 진행되며, 그리드 확장·요금·연료 믹스 논쟁이 동시에 촉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전력 우선’ 현실이 설비투자 결정을 앞당기는 배경입니다.
ESS, 데이터센터 인프라의 핵심 축
안정·피크관리·탈탄소의 교차점
ESS란 배터리나 플라이휠, 플로우배터리 등 일정 시간 동안 전력을 저장하고 다시 방전할 수 있는 설비를 말합니다. 이 ESS가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측면에서 여러모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요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력 수요 급증·변동 대응
AI 데이터센터는 부하(전력사용량)가 일정하지 않고 급격히 변할 수 있어요(“스파이크” 형태).
ESS를 통해 피크 시간대의 전력 사용을 완화하고(peak shaving), 또 낮은 가격대 혹은 여유 시간대에 충전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함으로써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전압·주파수·품질이 매우 중요한 데이터센터 환경에서, ESS는 전력품질 안정화 장치로도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드(전력망) 연결 및 인프라 제약 완화
데이터센터가 설치될 지역에서는 기존 전력망이 이미 포화 상태거나, 새로운 고용량 접속을 위해 승인·설비증설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ESS를 이용하면 전력망 연결을 기다리는 동안 자체적으로 저장된 전력을 활용하거나, 더 유연하게 그리드와 연계할 수 있어 “설비 확장 대기” 리스크를 줄일 수 있어요.
재생에너지 연계 및 탄소감축 대응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들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목표가 많고, 재생에너지 사용·탈탄소가 중요해졌습니다.
재생에너지(태양광, 풍력)는 간헐성이 있으므로, ESS를 통해 이를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 시 사용하는 방식이 재생에너지 활용률을 높이고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비상전원·UPS 역할 강화
데이터센터에서는 잠깐이라도 다운타임이 생기면 막대한 손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디젤발전기·UPS로 대응했지만, ESS는 더욱 빠른 응답성과 무공해 특성으로 매력적인 대안이 됩니다.

ESS전망
데이터센터용 ESS 성장 경로와 변수
현장의 요구는 명확합니다. 연속가동을 지키면서 피크를 깎고, 재생전원을 확대하고, 그리드 접속 대기를 줄여야 합니다. 업계 분석은 이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 수단으로 ESS를 지목합니다. BESS가 UPS 보완과 피크 셰이빙, 전력 품질·복원력 제고에 활용되며 데이터센터 쪽 채택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 반복 확인됩니다. 다만 배터리 비용·수명·열관리, 부지·접속 여건, 정책·관세 변수는 여전히 성장의 속도를 가늠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결과적으로 2025~26년은 대형 데이터센터의 전력 리스크를 어떻게 금융·정책·기술로 패키징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성패와 ESS 채택 속도가 갈릴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 주도 속 한국의 기회
공급망 재편이 여는 전략적 틈새
중국이 셀부터 팩·소재까지 이차전지 밸류체인을 광범위하게 장악한 상황이지만, 미·중 갈등과 관세·기술제한 이슈가 커지며 북미·유럽에서는 ‘중국산 회피’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공백을 한국이 신뢰성·현지화·시스템 통합으로 파고드는 그림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SK온은 미국 플랫아이언 에너지와 2026~2030년 최대 7.2GWh 규모의 LFP ESS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조지아의 일부 EV 라인을 ESS 전용으로 전환하며 북미 현지화를 가속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2025년부터 ESS 중앙계약(경매) 제도가 도입되어 장기 수익구조를 제공, 셀–팩–PCS–EMS–EPC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에 제도적 추동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요지는 ‘중국의 가격·스케일’과 정면충돌하기보다, 정책 적합성과 품질·안전·운영 신뢰성으로 대체 공급선의 지위를 강화한다는 전략입니다.
국내 ESS 밸류체인과 종목 점검
셀·팩·PCS·EMS 관점의 포지셔닝
이러한 기회의 중심에서 국내 배터리 및 전력장비 기업들 중에서 특히 ESS(에너지저장시스템) 시장 전환에 주목하고 있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373220)
LG에너지솔루션은 ESS용 배터리 사업을 적극 확대하고 있습니다. 자사 웹사이트에 따르면 전력망·상업·주택·UPS용 등 다양한 ESS 용도에 대응한 배터리 제품을 개발 중이며 “지역별 고객 니즈를 반영한 다양한 주택용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시장에서 약 6조 원 규모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또한 국내 오창공장에서는 기존 NCM 계열 생산 라인을 LFP ESS용으로 전환하는 검토가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 둔화 돌파구로 ESS 중심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삼성SDI (006400)
삼성SDI도 ESS 사업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20피트 컨테이너형 일체형 ESS 솔루션 ‘SBB’ 제품군을 통해 배터리 + 모듈 + 랙 + 안전공조장치가 통합된 형태를 선보였으며, 북미·유럽 시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또한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ESS용 배터리 생산능력의 약 90%에 해당하는 수주를 확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국내 정부 주도 대형 ESS 구축사업에서도 공급물량의 76%를 차지하는 등 국내·해외 모두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다만 관세·현지생산 거점 확보 등의 과제가 남아 있다는 점도 언급됩니다.
SK온
SK온은 비교적 늦게 ESS에 집중하고 있으나, 최근 북미 시장에서 의미 있는 수주를 확보하며 본격적 진입 신호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 소재 재생에너지 기업과 1 GWh 규모 ESS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또한 ESS용 배터리 모듈 설계 및 부품사업에서는 서진시스템과의 협업 등 밸류체인 내부 정비도 진행 중입니다.
SK온은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ESS 중심으로 사업포트폴리오를 전환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서진시스템 (178320)
이 회사는 ESS 밸류체인에서 배터리 셀이 아닌 주변기기 및 시스템 부문에 강점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PCS(전력변환장치) 전문기업과 약 330억 원 규모의 인버터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ESS의 핵심 부품 영역에 본격 진입했어요.
또한 ESS 부문 매출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성장세가 두드러집니다.
이처럼 셀·팩 중심이 아닌 서진시스템 같은 부품·시스템 통합형 기업이 ESS 시장에서 틈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SK 이터닉스 (475150)
ESS 설치·운영 쪽 사업도 확대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약 795 MWh 규모의 ESS 설비를 운영 중이며, 미국 텍사스 내 계통 연계형 ESS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에요.
또한 최근 국내의 제1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에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사용한 사업지를 확보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로 인해 ESS 실적개선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ESS 분야에서 설치·운영(O&M)과 전력거래 등의 서비스형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특징입니다.
한중엔시에스 (107640)
이 회사는 ESS용 수냉식 냉각 시스템(칠러, 쿨링플레이트, HVAC 등)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국내 유일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어요.
2025년 상반기 매출에서 ESS 사업 비중이 72%에 달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며, 북미 · 중국 양국에 생산거점 설립을 통해 글로벌 수요 대응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판매처는 예컨대 삼성SDI의 ESS 브랜드 ‘SBB’에 수냉식 냉각시스템을 납품하는 등 배터리셀 외주화 추세 속에서 냉각·안전·운영지원 부품 영역이 부각되고 있다는 좋은 사례입니다.
맺으며…
전력의 시대, ESS의 시간
AI 데이터센터의 고밀도화는 전력수요 폭증·접속 대기·전력품질·지속가능성이라는 네 개의 과제를 동시에 키웠고, ESS는 이를 한 번에 다루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25~26년은 프로젝트 단위의 금융·정책·기술 패키징 역량이 기업별 실적 격차를 가를 시기로 보입니다. 한국 기업에겐 미·중 갈등이 만든 공급망 재편과 북미·유럽 현지화 수요가 기회입니다. 가격·스케일에서 중국과 맞붙기보다, 품질·안전·운영 신뢰성에 현지화와 정책 적합성을 더해 데이터센터형 ESS의 표준 공급자 지위를 선점하는 것이 승부처일 것입니다.